03 일자리 찾아 인천공항으로! – S면세점

지옥같았던 3주간의 야간 환경미화를 마치고 나는 어떤 직장을 선택했을까?

 

내가 선택한 곳은 이전에도 하루 단기알바를 한 적이 있었던 S호텔 계열의 S면세점이었다. 나는 비교체험 극과극이라도 하려는 듯이 쓰레기장을 떠나 화장품, 향수, 고급 가방을 취급하는 곳으로 옮겼다. 아마도 그건 항상성 유지를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품위있게 샤방샤방~ *사진 출처 – 싱가포르 창이공항 웹사이트

 

거기서 나는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했다. S사 정직원들은 대개 사무실 직원들이었고,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같은 신입사원부터 조장, 반장, 주임까지 모두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S사 정직원들은 특유의 밤색 유니폼을 입고, 우리 하청업체 직원들은퍼런색 V넥 셔츠를 입었다.

같은 파란 셔츠라고 해도 이런 느낌이 아니라

 

이런 느낌에 가까웠다.

1. 하청업체 – 브랜드 기업을 위해 재주부리는 곰

 

왜 우린 퍼런색인가? 밤색이 아니라 퍼런색인 이유는 이곳은 고객을 직접 대면하여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 물류센터이기 때문이었다. 물류센터는 고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내역서를 출력해서 그 물품들을 공항 인도장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다.

출구 밖으로 나오면 공항순환버스를 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화물청사역

S면세점 물류센터는 인천공항에 가기 전 화물청사역이라는 곳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이 부근의 시설들 화물터미널, 면세점 물류단지, 공항업무지원단지, 기내식 센터 등은 공항과 관련한 업무를 보는 곳이지만, 일반 공항 이용객들이 올 일은 없는 곳이다.

그러니까 S면세점 물류센터는 이름만 면세점이지 실제로는 외딴 섬에 위치한 공장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S면세점이라는 네임파워 때문일까? 일하고 있는 계층이 거의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대학교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 많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수입 명품들을 다루는 면세점 일에 매력을 느끼고 몰려든 젊은이들이었다. 직장내 커플도 있었으며, 서로 썸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CC(캠퍼스커플)과 구분하여 FC(공장커플)라며 부르며 해맑게 웃곤 했다.

 

 

당신이 일하게 될 곳은 바로 회색 하늘 아래 차가운 깡통집.. 대략 이런 곳이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들이 처음에는 면세점에 취직하여 품위있게 일을 할 줄로 기대했을 것이다. (나도 포함해서) 그러나 물류센터에서 하는 일은 그런 일이 아니었다. 먼지 자욱한 창고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주문서의 요청에 기계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업무의 전부였다.
창고에서 주문서의 목록을 찾아 물건을 피킹하고, 피킹이 제대로 됐는지 검수하고, 검수된 물품을 안전하게 패킹하여 공항 면세점 인도장으로 보내는 시스템이다. 하루종일 일을하고 나면 코에서 검고 걸죽한 액체가 묻어나왔다. 자유로이 날개짓하며 모여든 영혼들은 각자 짜여진 근무 스케줄에 따라 거대한 면세점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마치고 나면 퇴근을 했다. (반은 집으로, 반은 클럽으로)

어떤 여자 사원은 옆의 사진과 같은 근무현장을 기대하며 면접 볼 때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왔는데, 자기가 하게 될 일이 작업대에 앉아서 버블페이퍼와 박스테잎으로 하루종일 포장만 하는 일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한다.

 

 


2. 하청업체 직원의 복지수준
인근식당이 멀어서 출근길에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씩 구입해서 갔다.

직원의 복지는 어떠했을까? 우리가 받은 직원 복지라고는 파란색 V넥 셔츠와 따끈한 율무차와 코코아차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자판기가 전부였다. 구내식당이 없어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는 타회사에 급식소를 이용했다.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대부분 도시락을 싸오거나, 아니면 화물청사역에 있는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라면과 함께 떼웠다. 혜자 도시락을 하도 먹었더니 김혜자씨가 마치 엄마로 느껴졌다. 화물터미널에는 배달 가능한 중국집이 한 곳 있었지만, 독점식당이라 맛이 형편없었다. 또한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되도록 5천원 넘는 식사는 지양하게 됐다.

20-30대의 자유로운 영혼들은 대부분 부실한 식사를 하며, 남는 점심시간에 라커룸 바닥에 누워 잠시 눈붙였다. 한정된 라커룸에 일에 지친 사람들이 몰려드니 대개 새우잠을 잤다. 그런데 그렇게 쉬는 모습이 높으신 S사 직원들에게 천박해 보였는지 언제부턴가 라커룸에서의 수면이 금지 되었다. 자기들은 주인이고 우리는 머슴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심플하면서 화려한 바로 그 디자인!

 


3.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을 보는 재미

 

나는 이곳에서 키엘, 디올, 랑방, 랑콤, 록시땅, 바비브라운, 베네피트, 비오템, 아베다, 안나수이, 겔랑, 디올, 라 메르, 슈에무라, SK-II, 에스띠 로더, 엘리자베스 아덴, 지방시, 클라란스 등 처음 들어보는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들을 마주했다. 향수를 제외하고 어떤 기능이 있는 제품들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유명 브랜드의 예쁘게 포장된 제품들은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베네틴트 제품들이 훌륭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제품들이 놓인 선반 위쪽마다 설치된 CCTV였다. 제품 포장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과도하게 많은 CCTV를 설치해놓아서 직원들을 은근 도둑취급하는 것 같았다. 출퇴근시 소지품검사도 철저하게 하면서, 근무 시간내에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쓸 제품들도 아니고, 어떤 제품인지 포장을 뜯어볼 수도 없었지만 주문서의 목록을 찾아다니며 배운 점들이 있었다. 어떤 브랜드가 고가이고, 어떤 제품이 인기가 많은지 차츰 알게 되었다. 중국인 보따리 상인은 어떤 제품을 사재기 하는가? 등등 그러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다.

언젠가 한번은 비오템 제품에 참 참해 보이는 여자 모델이 있었다.(아래 사진) 당시 솔로였던 나는 동료직원에게 말했다. “야.. 내 여자친구는 딱 이 정도만 되도 좋겠다. 난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좋더라”

그날 난 동생에게 처음으로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다. 아울러 이 모델 이름이 공효진이며, 이미 남자친구가 있으며(당시 류승범), 연예인 중에서도 탑클래스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동생이 몰랐던 것이 하나 있는데, 지금 나는 공효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아내를 얻었다는 것이다.

 


4. 노예열전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기왕 머슴이 될 거 상머슴이 되는 거다!

 

S사 사무실 직원중 영화배우 송강호를 닮은 직원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1층 작업장에 자주 내려왔고, 나는 그 분을 도와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첫달에 연장근무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근무년차가 3년째 된다는 동갑내기 선임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았다.

나는 창세기 요셉 이야기를 보면서 꿈이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으로 가게 되든지, 지금 있는 환경이 변하든지 둘중에 하나라는 말을 믿어왔다. 그래서 물류센터에 있으면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지원했다. 패킹을 제외하고, 피킹, 사은품 관리, 검수, PDA를 이용한 물건 적치, 입고 등등 대부분의 일을 해보았다.

 

 

 

또한 나는 학창시절 읽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영향을 받아 근무환경 개선에도 관심이 있었다. 당시 20-30대 동료들은 조장, 반장, 주임 등을 뒤에서 욕을 하면서도 그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토를 달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이유를 꼭 물었다.

한 예로 향수, 양주 등을 피킹하다가 물품이 파손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관리자들은 그 파손에 대한 책임을 사원들이 연대책임을 지고 배상하자는 서류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보통 회사에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를 쓸 때면 기계적으로 동그라미 쳐진 부분에 체크하고 서명하는 분위기였기에 전체를 꼼꼼히 읽는 행동은 눈총을 받는 행위였다. 내 앞의 사원들은 반장이 내어민 서류에 빠른 속도로 동의, 서명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최근 파손되는 제품들이 많아지면서 그 문제를 앞으로 이렇게 처리하겠다는 문서에 동의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생각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직원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내 차례가 왔고 나는 서류 전체를 꼼꼼히 읽어보고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주변 분위기는 얼음장이 되었다. “아니 다들 동의하는데 채명훈씨는 왜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거지?”라는 반장의 질문에 나는 차분하게 답했다. “회사에서 업무 과정에서 일어나는 제품 파손에 관해서는 이미 들어놓은 보험으로 처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의로 파손할 경우 해고의 사유가 되지만, 업무 과정에서 파손된 것을 사원의 연대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한 처사 아닙니까?” 떨리는 마음 최대한 억눌러서 말했고, 분위기가 술렁이었다. 이미 서류에 동의한 동료들도 내 말을 듣고는 설득되었다.

아무튼 나 혼자 동의하지 않았고, 호기롭게 이 일을 진행한 관리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며칠 뒤 관리자들은 그 서류 내용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며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우리가 이러한 동의를 받는 것은 실제로 배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최대한 파손이 나지 않도록 잘 해보자는 차원에서 그런 거였어요.”

나의 당당한 모습과 관리자들의 비겁한 변명은 대조를 이뤘다. 20대 동생들은 “형 정말 대단해요”라고 치켜세웠지만, 나는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다. 노동자로서 일하는데 어떤 부당한 의무를 지우려 한다면 내던져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나의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면 지켜내야 한다. 가족같은 분위기라고 말하는 회사는 대개 이러한 억압이 있다. 그런 회사는 앞에 가족에서 ‘가’ 자를 빼면 딱 맞다. 그런데 안타깝게 전태일을 모르는 청춘들은 부당한 의무를 자원해서 짊어지고, 자명한 권리를 자진해서 반납하고 있었다.

 

S면세점을 포함한 대부분의 비정규직 하청업체 직원은 보통 스케줄 근무를 하는데, 이 또한 골 때리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스케줄 근무! 스케줄 근무는 빨간날이라고 쉬지 않는다. 내가 쉬는 날이 빨간 날이다.

학교 다닐 때는 월-금 오전에 등교하는 것이 보통이며, 직장인들은 월-금 오전 출근이 보통이다. 그러나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되면 ‘스케줄 근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월-금 일하는 근무는 일반인들의 생활 리듬과 사회 관습에 따라 쉰다. 한마디로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쉰다. 그리고 공휴일이 있으면 쉬며, 가끔은 샌드위치 휴무로 더 쉬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케줄 근무는?

스케줄근무는 1년 365일 24시간 주간 야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회사에서 직원들이 나눠서 근무를 하는 방식이다. 보통 한달에 7번에서 9번정도 쉬는데, 미리 짜놓은 한달 스케줄 표대로 근무를 한다. 그러니까 평일에 쉴 때도 있고, 휴일에 쉴 때도 있는 것이다. 일반 직장과 한달에 총 쉬는 날이 비슷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데, 아니다. 스케줄 근무자는 구정연휴나 추석연휴 때에 온전히 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도 그냥 다른 날과 똑같다. 그날 일한다고 돈 더 주는 것 절대 없다. 일반 직장인들은 휴일에 일하면 평일보다 1.5배 더 받고, 연장하면 2배 받는데, 스케줄 근무자는 그냥 내가 일하는 날이 무조건 까만날인거다. (단, 예외로 노동절은 스케줄 근무자를 배려해서 그날 근무할 경우 추가 수당을 챙겨주게 바뀌었다. 그래봤자 1년에 딱 하루)

 

추석연휴에도 열일하는 당신을 위해 이 종이컵에 회사의 마음을 담아 드립니다.

이와 관련해 웃기면서 슬픈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011년 추석연휴로 기억한다. 남들 다 쉬는 연휴 때에 S면세점 물류파트는 더욱 바빴다. 왜냐하면 명절이면 해외여행객이 급증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면세점 이용객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직원들 대부분은 연휴 때에 출근을 했고, 평소보다 많은 작업량에 다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추석 당일에는 비참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는데 그것은 먹는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1년중 먹을 것이 가장 풍성할 때가 추석 아닌가? 군대에서도 특식이 나오는 시즌인데, S면세점 비정규직들의 추석은 한없이 배고팠는데, 그 이유는 추석 당일에는 도시락을 구매할 화물청사역 편의점도 휴무였기 때문이다.

이 때 관리자인 조장이 직원들을 불러모으더니 추석 연휴 때에 다 나와서 일하느라 수고가 많다며 우리를 격려했다. 그러면서 회사 특성상 365일 쉼없이 돌아가고 특히 연휴 때가 더 바쁘니 양해해달라고 했다. 이렇게 명절을 회사에서 보내게 되었다며 위로의 의미로 검은 봉다리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1.5리터 탄산음료수 3병(환타, 콜라, 사이다로 기억). 그는 이것을 종이컵에 따라주며.. 줄 수 있는게 이것밖에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중학생들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요즘 초등학생들도 치아 삮는다고 탄산음료수 잘 안먹는다. 그런데 20-30대의 직원들에게 추석 연휴에 탄산음료라니 이건 분명 놀리는 거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 종이컵을 건낸 조장은 관리자에 속했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나와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불과했고, 조장타이틀 달고 좋은 점이라고는 나보다 한 달에 5만원정도 더 받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사비를 들여 직원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낸 것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어서 생각해보니 씁쓸했다. 아무튼 사람은 빨간 날에 쉬어야 한다. 스케줄 근무의 단점은 그외에도 많지만 대표적인 단점만 서술했다.

 


5. 통장에는 돈이, 함께 하는 동료들과는 추억이.

나는 하청업체 노동자를 원청업자의 노예에 빗댔다. 개도 부잣집 개가 낫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브랜드 기업의 장점은 무엇일까?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직장이라는 뽀대 말고 어떤 장점이 있을까? 그것은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잘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매달 월급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통장에 돈이 쌓이는 기쁨을 알았다. (그 전에 교회에서 일하면서 받은 20만원부터 70만원까지의 사례금은 도무지 쌓이는 일 없이 항상 바닥이었다.) 그러기에 통장에 쌓인 돈으로 그동안 갖고 싶었던 카메라와 렌즈들을 하나씩 구매했다. 한달에 7~8번 있는 휴일에는 다들 쉬기 바빴지만, 나는 휴일을 활용해서 국내여행을 다녔다. 사진과 자전거를 좋아했기에 곳곳을 다니며 블로그에 기록을 했다.


20살 첫 알바 월급으로 50만원짜리 디카를 샀고, 31살 직장생활 월급으로 저렴한 렌즈들이지만 다양한 화각의 렌즈들을 하나 둘 보유하게 되었다. 휴일이면 국내 여행을 여기저기 다녔다. 그리고 근무시간에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동료들과 재치있는 입담하는 것이 늘었다. 가끔 수다 떨다가 관리자에게 걸려 지적받곤 했지만, 젊은 청춘들이라서 혼나도 기죽지 않고 또 몰래 수다를 이어갔다.(관리자 지들도 검수작업할 때 보면 수다 떠는 것을 보면 수다는 단순반복업무의 빠뜨릴 수 없는 동반자인가보다.) 바밤바 3행시라든가, 노래 이어부르기라든가 그렇게 우리는 우애를 다져나갔다. 여기서 함께 일했던 형, 누나, 동생들은 지금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 돈 버는 재미와 일하는 재미를 알게 해준 직장이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6개월이 다 되어 갔다. 이제 남은 휴학 기간은 6개월뿐이었고, 익숙해진 이 곳에서 편안하게 안주하기 보다 어서 다른 경험을 또 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알바 사이트를 뒤지던중 ‘기내식 조리보조’라는 구인글을 보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