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사역을 계속하기 힘든 이유.. 알바비긴즈

신대원시절 수업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어떻게 시작된 사역자의 삶인가?”

“그걸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전편에서 열심히 떠든 내용을 요약하면 위와 같다. 그렇다면 니가 좋아서 시작한 사역인데, 계속하면 되지 왜 못한다고 징징대냐? 할 수 있다.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돈’ 때문이었노라고 하기 전에, 구차하지만 좀 더 고상한 이유를 들고 싶다.
(물론 돈 때문이 맞다. 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이 빠진 결론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구차한 변명.. 아니 고상한 이유를 말해보겠다. 사역을 계속할 수 없는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역 자체에 있을 수도 있고, 사역자의 내부 혹은 외부적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사역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만 두게 되는 경우는 크게 3가지로 다음과 같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조건따지고 있지 말고 일단 떠나야 하는 것도 맞지만, 가기 전에 알아야 하고 준비해야 할 일들이 꽤 많다.

첫째, 사역이 뭔지 모르고 시작했다. / 사역 자체
일단 남들에게 존경받고 권위도 있고 멋져보여서 시작했는데.. 사역이 섬기는 일이라고? 내가 섬김 받는게 아니라 섬겨야 한다고? 설마 그걸 모르고 시작했다면 하루 빨리 그만둬야 한다. 그게 자신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다. (이 단계는 신학생 지망생들에게 권하는 김남준의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도서를 통해 대개 걸러진다.)

둘째, 사역이 뭔지는 알고 시작했는데 왠지 계속하기 싫어졌다. / 사역자 내부적 갈등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기도하며, 섬기는 일을 해왔다. 사실 사역이 좋아서 한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에 빚진자로서 사명감으로 걸어가는 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일보다 다른 일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거부하기 힘든 매력으로. 예를 들면 경제적 어려움에 늘 허덕이며 살다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났거나. 사역에 지친 나에게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위로가 되어 이탈을 꿈꾸게 되었다거나. 실제로 이런 이유들로 강제로 사역 정지먹은 이들이 있다. 자기 발로 그만 두거나, 아니면 정지먹거나 둘 중에 하나다.

셋째, 사역을 계속하려는 마음은 변함없는데 사역할 여건이 안된다. / 사역자 외부적 환경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어느날 건강이 안좋아져서 도저히 사역을 계속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또는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만으로는 도무지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기본적인 생활이 안되는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도외시하며 남의 도움만 바라며 손을 벌리는 것은 목회자로서 덕이 안 될 뿐더러, 사람의 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중직을 하게 된다.

 

나의 경우 3번에 해당하나, 좀 고상하게 변명하고 싶으니.. 내가 내린 결론, 즉 사역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름부족’ Low fuel

 

 

자동차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자동차와 운전자가 있어야 한다. 잘 정비된 자동차 그리고 숙련된 운전자가 만나면 목적지에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름’이다. 잘 정비된 자동차와 숙련된 운전자가 만나도 기름이 다 떨어지면 길 한복판에 서는 수밖에 없다.

이 ‘기름’은 사역을 지속하는데에도 필수조건이다. 사역에 있어서 기름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대한 확신 이후에 요구되는 ‘열정’과 ‘헌신’이며(사역자 내부적 요인), 사역에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들(사역자 외부적 요인)이 바로 ‘기름’에 해당한다. 나는 여기서 ‘외부적 요인’만을 다루려 한다.

고상한 척 복잡하게 말했지만, 간단히 말하면 ‘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도 돈이 있어야 한다. 아니 사역까지 가지 않더라도, 삶의 지속을 위해서도 돈은 필수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신학생이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다. 후원은 감사한 일이지만, 가만이 앉아만 있어 남이 주는 돈만 바라는 버러지 인생이 되면 안된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 12절

 

 

 

그래서 알바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알바비긴즈! 알바여정의 시작

나의 첫 알바는 2000년도 스무살 때 도로에서의 신호수 일이었다. 명지대 앞에서 땀좀 흘렸었다. 당시 번 돈 50만원으로 생애 첫 디지털 카메라 ‘canon IXY 200’을 샀다. (이후 요긴한 아이템으로 사용함)
그 외에도 용돈벌이로 노가다를 간간이 했지만, 신학을 한 이후로 하게 된 첫 알바에 대해 말하려 한다.

에버랜드 사육사같은 복잡을 하고서 맹수같은 차량 운전사들을 조련한다. (자료사진)

그러니까 나의 첫 알바는 2011년도에 X랜드계열의 쇼핑센터에서 주차안내였다. (돌이켜보니 공통적으로 자동차 신호를 보는 일이다.) 이 첫 알바는 신학대학원 1학년 1학기 때 방교수님 수업의 과제 일환이었는데, 반나절 정도 알바 체험을 하고 소감문을 쓰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알바의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과제를 하기 위함이었고, 알바를 통해 일반 성도들의 직장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돈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나는 당시 최저 시급으로 반나절 알바비를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서 일종의 낙하산 인사같은 대우를 받았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장 지인이자 사목인 방목사님의 추천으로 들어갔으니 안좋은 이야기가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장기 알바생에 비하면 꽤 높은 대우를 받았다 한다. 그런데 그 높은 대우란 무엇인가? 그건 내가 높은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매우 낮은 대우를 받고 있었던 것;;

주차 안내는 교대식이라서 현장 투입 시간과 대기하며 쉬는 시간이 있다. 장기 알바생들은 직장에 거의 종일 있으면서 지내는데, 총 근무 시간에 비해 정말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구내 식당이 있는데, 하루에 중식 석식 중 1번만 지원된다 한다. 그래서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한끼는 식당에서 먹고, 나머지 한끼는 식사비를 아끼려고 컵라면으로 떼우거나 거른다고 했다.

 

 

 

내 생애 마지막 폴더폰 스카이를 들고..

 

당시 나와 같이 일했던 여자 알바생은 대학교 휴학중이라 했는데, 딱 봐도 영양실조로 보였다. 그런데도 회사의 낮은 임금과 1식 제공 정책으로 인해 식사비 때문에 밥을 거르고 있다니.. 직원을 가족같이 생각한다면 이런 저열한 처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X랜드의 인력착취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건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달랐다. 실제로는 얼마나 더 심할지..

몇년전 구의역 열차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청년의 소지품 중.. MBN자료화면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저임금 노동자, 사회 초년생들의 삶이었다. 앞으로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들의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대는 내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앞으로 신대원 졸업을 하고, 전임 사역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일반 직장생활은 경험할 일이 없을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사회 경험도 부족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친 김에 휴학하고 알바를 마음껏 하는 거다.

 

*휴학하고 제대로 시작한 알바

일단 1학년 1학기를 마치자 마자 휴학을 했는데, 휴학을 해도 다음 학기 등록금은 내야 했던가? 아무튼 나는 당장 등록금 해결을 목표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학부도 아니고, 석사인데 부모님께 손 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사진을 좋아해서 여행 사진 알바도 알아보았는데, 그건 일종의 머슴으로, 사진실력이 아니라 말빨과 얼굴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의 돈 벌기가 쉽지 않고, 아무 알바나 하려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일을 해야했기에 하루 하루 일자리를 소개받는 인력소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구직사이트를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았는데, 면접보라고 연락온 딱 한 곳이 ㅇㅇ환경미화였다.

자료화면 출처 – SBS뉴스

 

*’환경미화’ – 타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신의 체면을 희생하는 사람들

환경미화는 교실 뒤 게시판을 예쁘게 꾸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해가 지고 나면 사람들이 집 밖에 내어놓은 쓰레기 봉지를 수거하는 일이다. 저녁 10시 이후부터 서울 마포구, 홍대 일대를 다니며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 가내수공업 폐기물 등을 7~8번 수거하고 나면 해가 떴다.

이 환경미화는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원자가 있다고 해도 하루 이틀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3D업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딱 3주간만 하기로 작정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라 해도.. 아니 그럴수록 더더욱 체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3주는 내가 정한 기한으로, 그 정도면 어느 정도 공부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 3주간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날들이었다. 기한을 정해놓아서 다행이었다. 2011년 여름은 이례적인 강수량의 장마가 있었는데, 그것도 거의 야간에 내리는 비였다. 차 뒤편에 매달려 골목골목을 다니며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고, 손과 발은 퉁퉁 불었다. 반액체가 되어 질척이는 운동화를 버리고 누군가 길바닥에 버린 주황색 크록스 신발을 주워다가 바꿔신었다. 땀을 비오듯 쏟고, 다시 퍼붓는 비로 땀을 씻어내며 쓰레기 봉지와 씨름을 했다. 아.. 그곳의 이름은 브니엘인가? 나는 환도뼈대신에 평소 부실했던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홍대 식당가의 쓰레기는 정말 대단했다. 일반 쓰레기 봉지에 야무지게 담은 홍합 껍데기와 돼지 뼈들을 아직 잊지 못한다.

 

밤새 쓰레기를 치우고 샤워를 마친 모습. 비누칠을 박박 했지만 몸에 밴 쓰레기 냄새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나한테 냄새나요?”라고 어머니에게 묻자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이니까 냄새 난다고는 말 안할께.” 이런 일도 해봐야 한다고 좋은 공부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시며.. 차마 냄새난다고 말씀하시기는 가슴아프셨던 것이다.

 

매일 10시간씩 일했지만, 하루 일당 7만원이었다. 3주간의 극기훈련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손에 들어온 돈은 120만원 남짓. 나에겐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쓰레기차가 지나갈 때 손으로 코를 막으며 얼굴을 찡그렸지만, 어떤 이는 응원해주었다. 다수의 인간다운 삶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체면을 희생하는 소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복학후 홍대 거리에서 재활용쓰레기 수거팀과 우연히 마주쳤다. 안면이 있어서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비타500 한상자를 사다가 드렸다. 주간에 길거리에서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분들은 나름 고액에 여유있게 일하는 정규직들이고, 야간에 쓰레기차에 매달려 쓰레기를 수거하는 분들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나는 이들을 존경한다.

 

이렇게 휴학후 첫 알바를 마쳤다. 이제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자신이 생겼다. 남은 휴학기간동안 또 어떤 일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