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쩌다 전도사

스무살 당시 다들 찍곤했던 셀카 흑역사

2000년, 그러니까 내가 20살을 살아가던 때의 일이다. 밀레니엄버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분위기는 새로운 천년을 맞아 한껏 상기되었다. 1990년대말에서 2000년 초반은 통신기술의 발달로 공중전화, 무선호출기(삐삐), 씨티폰, 휴대폰까지 다양한 발전을 경험했다. PC통신도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시절부터 PC방과 가정용 초고속 인터넷까지 두루 사용했던 시기였다. 81년생인 나는 이 모든 변화들을 학창시절에 겪은 N세대라고 불렸다.

당시 인터넷은 이제 막 개척되기 시작한 영역이었고, 웹디자인 웹프로그래밍 등 프론티어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ZeZZ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숭실대 컴퓨터학부 00학번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팬페이지를 만들며 네티즌들과 소통하며 전국 모임의 팀도 만들었다. 당시 주변에는 이런 꿈들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페이스북 이전에 싸이월드가 있었고, 싸이월드 이전에 개인홈페이지가 있었다. 개인홈페이지는 클릭클릭하면 만들어지는 네띠앙의 마법사부터 CGI 게시판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까지 다양했다. 개인홈페이지를 좀 더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HTML 태그, CGI 팁이 필요했다. 오른쪽 스크린샷 teamzezz *출처: http://0-soo.tistory.com/68

 

히데 추모 프로젝트 일명 ‘히추프’, 당시 히데 팬사이트 운영하는 주인장들과의 연합. 전국모임 한 번 하고 장렬히 산화함.

 

당시 나의 패션은 올블랙으로, 교회라는 빛의 자녀들의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어둠의 자식 그 자체였다. 나랑 좀 비슷했던 친구와 함께.

 

 

그러다가 21살이 되던 해에 나는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아니! PC통신의 발달이고 개척자 정신이고 하다가 갑자기 왠 교회? 하겠지만, 첨단 시대를 살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행복’에 관한 것이었다.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은행구좌의 잔고액수..” 이런 것들이 결코 행복의 척도가 될 수는 없었다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에서 20대 초반인 나는 행복하지 못했고, ‘진리’라는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해답을 갖고 있다고 대담하게 말하고 있는 곳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곳은 바로 교회였다.

나는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하고 믿은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믿음을 구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믿음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갈구했던 인생의 큰 문제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2003년, 계산교회 대학청년부 겨울 수련회 현장

 

귀하게 얻은 믿음이니 잘 키워나가야 했다. 그래서 이후로 주중에 진행되고 있었던 성경공부 모임에도 착실하게 참석했다. 당시 내가 했던 성경공부는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사역훈련 시리즈였다. 청년부 담당 목사님(당시 강도사)께서는 구약학 전공이라서 구약을 큰 그림으로 이해 되도록 잘 강해해주셨다. 그리고 평신도 사역을 강조하여 목사나 선교사 등 종교의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만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제자 삼는 예수님의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당시 그 가르침에 감화받은 청년들이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 처음에는 40여명 나중에는 300여명까지 늘어났다. 이는 단순히 개별적으로 믿는 신자들의 총합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님께서 위임하신 명령을 수행하는 제자를 지향하는 모임이었다.

 

 

 

‘JEJA’를 형상화한 사진. 나 혼자 79년생 형님들 사이에 꼈다.

나는 거기서 평생 품고 살아야 할 삶의 가치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치를 계속해서 널리 전파하기 위해 ‘기독교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즉 “바로 이것이 신자의 삶이다.”라는 가치를 발견했고, “그것을 어떻게 재생하며, 지속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2년 후 23살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어리고 세상을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마음 속에 굵게 그어진 한가닥의 선이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인생의 방향을 알게 된 21살, 그리고 그것을 계속 확인해나가던 22-23살, 그리고 그것을 위한 힘을 기르는 시기라고 생각한 24-26살의 군생활. 그리고 27살의 나는 그동안의 과정을 통해 알게된 것을 더욱 확고히 하며, 구체화시킬 수 있는 길을 걷게 된다.

 

 

 

 

 

– 출처 ACTS 신주일님 –

신학교 입학을 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했다. 27살에 새내기라니.. 게다가 당시 학교는 학내사태로 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튼 출액츠.. 아니 졸업후에는 수원에 있는 합동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를 전공하게 되었다. 총 7년의 시간을 신학교에서 보낸 것이다. 갑자기 왠 신학이고 또 왠 전도사 사역인가? 신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기독교교육의 기초를 쌓기 위해서. 전도사 사역을 해야 하는 이유는 기독교교육의 현장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팔자(?)에 없는 신학과 전도사사역을 하게 되었다.

 

학내사태로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복잡했던 학부시절을 마치고.. 어느덧 졸업

 

신대원 시절 마칠 즈음 나홀로 떠난 성경지리답사. 이 물을 마시면 힘이 좀 솟아나지 않을까? 300용사를 추려낸 하롯샘에서 / 이스라엘

 

20대 초반 웹 개척자를 꿈꾸던 청년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여 27살에 신학교에 들어가 35살이 되어 졸업하기까지 결코 적지 않는 시간이었다.

 

 

꿈꾸는 자들의 모임 ‘태사자’ 비전의 밤 2004년.

이제 38살이 된 지금은? 가려고 했던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 비전 교육 전문가가 되어 교재도 출판하고, 교회와 선교회 등 단체에 보급하고 강연을 나가고 있어야 한다.  (2004년 11월에 지인들과 함께 했던 ‘비전의 밤’ 행사중 작성한 ’10년후 성공모습 설계’에 의하면 2014년에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2011년 여름, 비가 엄청 많이 내리던 해. 신대원 휴학하고 1년간 이런 저런 일을 했다. 첫 스타트로 환경미화를 하게 되었는데 시작부터 끝판왕;;

 

비전 교육을 펼쳐나가기는 커녕 사역의 가장 기초 단계라 할 수 있는 교회에서의 전도사 사역마저도 계속해나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나가고자 함이다.

물론 나는 앞으로 사역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강도사 고시도 합격하고, 목사 안수도 받아야 하겠지만, 그 전에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이 전도사 사역이다. 2007년부터 전도사를 했으니 총 10년 남짓 진행한 전도사 사역인데 이제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사역을 지속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